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설립 스토리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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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나무 싹을 함께 틔운 고려인 청소년 김율리아
고려인학교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를 하면서 매번 듣는 말이 있다. 왜 고려인이냐고? 2019년 평택대학교 다문화교육원(당시 평택대학교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교실에서 중도입국 다문화 청소년들에게 인성 수업을 마치고 나가려는 나의 등 뒤로 고려인 김율리아(당시 19세)가 서 있었다. 나에게 다가와 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목사님 괜찮으세요?”라고 물었다.
그 순간 한 달여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울컥하며 눈물이 찔금 나오는 것을 애써 숨겼다. 나는 “네, 괜찮아요”라고 답하며 율리아를 쳐다보았다. 너무 고마워 율리아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어 물었다. “율리아, 무엇이 필요하니?” 가정 형편 상 갖고 싶은 것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물은 거였다.
그런데, ”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요“라고 했다. 너무 뜻밖의 대답이었다. “아니, 한국어는 지금 배우고 있쟎니?“라고 다시 확인했다. 율리아가 고개를 저으며 ”한국어를 배우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율리아에게 대답을 미루고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함께 교실을 나왔다.
사실 평택대학교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컨소시엄으로 목회를 하던 교회를 개조하여 교실을 만들었다. 한국어를 배우던 여러 나라의 중도입국 청소년들에게 교실을 제공하고 한국어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준비했는데, 그들은 우리 교회에서 공부하길 싫어했다. 컨소시엄으로 시작한 수업이 한 달 채 넘기지 못하고 청소년들이 모두 나가버린 것이다.
그들을 위해 준비한 나의 모든 열정과 헌신, 들어간 비용 또한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중도입국 청소년에 대한 절망, 낙심 그리고 섭섭함이 나의 의욕을 꺾을 때, 율리아가 유일하게 나의 마음을 알았을까? 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한 것이었다. 그런 율리아에게 뭐든지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한국어 수업이었다니…
나는 율리아에게 대안학교를 제안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으로 이주한 고려인 청소년, 그들은 낯선 문화 속에 던져졌고 서툰 한국어였으나, 조상의 나라에 왔으니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들은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일 뿐이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고려인 청소년들에게 숨터와 꿈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고려인 청소년들이 쉴 수 있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곳, 성경에 나오는 엘리야가 자신이 처한 절망적 상황으로 삶을 포기하려 했을 때 로뎀나무 밑에서 원기를 찾았던 것이 생각났다. 엘리야가 쉬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까마귀로 주린 배를 채워 다시 힘을 찾은 그곳, 고려인 청소년이 힘든 한국살이를 이겨내고 글로벌 코리안으로 커갈 수 있는 로뎀나무를 그들과 함께 심고 가꾸자고 다짐했다.
안성시 공도읍 중복리 밭 한가운데 있는 로뎀나무, 하지만 엘리야에게 다시 달릴 힘을 주셨던 곳.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가 고려인 청소년들에게 쉼을 주고 꿈을 꾸고 이룰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 내가 까마귀가 되어서 저들을 먹이고 미래를 함께 그릴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다.
율리아가 흔쾌히 돕겠다고 했다. 고려인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율리아와 안성 시내(내리), 평택 안중, 포승읍, 신창, 둔포, 아산 등에 전단을 붙이고 현수막으로 광고하기 시작했다. 혹시 집이 멀어서 올 수 없는 청소년을 위해 숙소(아파트) 2곳을 임대하여 기숙사로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5월부터 광고를 시작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모이지 않았다. 학비와 급식 모두 무료였지만, 등록이 너무 미진했다. 그러나 고려인 청소년에게 로뎀나무가 꼭 필요하다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2019년 8월 9일 첫 입학예배를 드렸다. 12명의 학생으로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를 시작했다.(계속)